0617, 바르셀로나



이 번엔 3 개월, 스페인을 넘어 모로코로 갈 거야. 내년엔 아마 아시아를 도전해 보겠어!

지금 6개월간 여행하고 있고, 돈 떨어지면 돌아가지 뭐.



세상 더없는 진리를 만난 기분이다.
이 사람들 왜 이렇게 멋있고,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한가.

카미노 좀 못 마치면 어떠나.
여기는 스페인인데, 전혀 다른 세계인데,
잔뜩 긴장하고 괜히 피곤해져서는, 앞으로 한 달 넘게 걸을 -이 말 마저도 부담이다. - 수 도 있는 길에서 올 온갖 피로를 어깨에 지고
여기가지 왔는데 까미노도 못 하고 가면 쪽팔려서 어쩌지, 그러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르셀로나의 밤에.
큰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도시에 앉아서.

여기, 바르셀로나잖아.

하다가 싫어지면 돌아가지 뭐,
재미 없으면 안 하면 되지 뭐.



내 인생인데 내가 즐거운 걸 찾아가면 되지 뭐.



고맙다, 호스텔에서 만난 까미노의 천사들.

140612, 마드리드, 이상한 응원들과 시작한 여행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얼떨결에 타이밍을 놓쳐 일어로 말 걸 수 없게 된 일본 여자애와 서로 눈으로 인사하며 내린 마드리드 공항에 짐을 풀고 잠시 앉았다. 어차피 새벽 여섯 시에 도착해서 시간도 많고, 친구 준다고 밀어넣은 650ml짜리 소주, 화장품 등등이 어깨를 짖누르고 있어 짐 정리를 하지 않고서는 이 대로 갈 수 도 없었다.

사실 가기 전에 괜히 무서웠다. 유럽, 이름만으로 로망일 수 있겠지만 내게는 그저 먼 어느 곳, 세상에 존재한다고 들었지만 확인 해 본 적 없으니 별나라 같은 그냥 그런 어느 공간일 뿐이었다. 카트만두, 발리, 자카르타, 만달레이, 난, 윈난성, 이런 지역의 이름들이 울림 만으로 내게 설렘을 주는 것과는 너무 다른, 그냥 이름들이었달까. 가기로 결정되고, 가는 날이 다가올 수 록 나는 왠지 떠나고 싶지 않았다. 무섭기까지 했다. 전화 온 친구들에게 무섭다고하니 누군가는 "니가 제일 무서워" "니가 제일 도깨비같애"라며 핀잔처럼 놀려댔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마드리드 공항에 앉아있는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 내가 제일 무섭지, 다 덤벼. 씩씩하게, 알 수 없는 곳으로 걸었다.


길을 물으니, 사람들은 영어를 못 하는데 친절하다. 오로지 스페인어로 이야기 하는데 어쩐지 대충 알아 듣겠고, 바로 앞에서 호스텔을 못 찾고 헤매니 데려다주기까지 했다. 작은 친절에 언 마음이 녹는다. 예전, 아마 말레이시아즈음, 아시아를 여행하며 친절과 사랑은 사람의 마음에 꽃을 피운다고, 꽃이 지나가니 꽃길이 된다고 적었었다. 다시금 그 문장이 떠올랐다.


지도를 들고 목적지를 찾는 걸 포기하고 걸었을 뿐인데, 유명하다는 솔 광장, 산미구엘 시장, 프라도 미술관까지,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 눈 앞에 퍽퍽 나타났다. 이게 바로 초심자의 행운인가, 내가 무당인가 싶을 정도로. 내가 모르는 방식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리고 역사가 존재해 왔다. 왠지 마음이 몽글몽글 해 진다. 모르는 것, 관심 없는 것 알고 싶어 하지 않았었는데, 그럼으로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읽을 기회를 놓쳐왔는지 새삼 생각했다.


이상한 응원과, 이상한 여행법, 그렇게 뚜벅뚜벅 잘 걸었다. 아마.

0610_카미노 -10, 출발 전날. '변화, 욕심, 움직임, 친구' 2014_순진한 걸음(산티아고순례)




1. 변화

 밍기적거리다 이제야 짐을 싸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여행은 예전의 여느 여행과 같지 않았다. 행선지를 몇 번이나 바꾼 것도,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니 사실은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나는 뭐가 두려웠던 것일까? 이제야 겨우 안정되어가는 것 같은 내 마음상태도, 엄마아빠와 오랜만에 참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배울 점이 많은 참 멋진 사람들 사이에 둘러쌓여 살고 있다는 것 역시 매 순간 깨닫고 있다. 생각해보면, 지금이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엉덩이 붙이고 움직이고 싶지 않은 마음일 테다.

 하지만 나도 이제는 스물 다섯이 넘은 나이. 눈물 콧물 남부럽지 않게 쏟으며, 25년 세월이 내게 혹독하게 가르친 교훈이 하나 있다면 무언가 변화하는 순간 흐름에 자연스레 타지 않으면 언제나 결과는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바로 그 시점에, 내 마음이 '여기야, 움직이고 싶지 않아, 붙잡고 싶어.' 라고 말하는 순간에 한 발 변화에 몸을 싣지 않으면, 내가 멈출 수 없는 그 변화는 가장 파괴적인 방식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말이다. 돌고 돌아 카미노에서, 네팔과 태국과 인도네시아, 미얀마까지 거쳐 내 앞에 다시 '카미노'가 떨어졌을 땐 이미 내가 길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길이 나를 부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움직이고 싶지 않은 지금과 같은 썩 나쁠 것 없는 좋은 날들, 변화가 나를 부른다면 움직일 시간이다. 생에 최초로 아시아를 벗어나 본다. 떨린다. 사실 좀 두렵다. 그리고 두려우니까, 내 궁딩이 내가 차며 일어나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움직이고 싶지 않아' 라며 아이처럼 주저앉아 떼 쓰는 짓은 하지 말자.


2. 얻을 것 보다 버릴 것

 카미노 짐을 싸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을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할 것을 잘 보는 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잘 살아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것저것 챙겨주던 친구들. y연맹에서 받아온 약들, 티셔츠, 모자, 가서 읽으라고 주던 책까지. 무식하게 넣고 보니 (특히 지사제부터 변비약까지 총망라한 약 뭉치를 보고 앉았자니) 웃음이 풀썩 뱉어진다. 내가 최근 3년간 먹은 약을 다 합해도 이거 반도안 될 것 같다. 그래도 솎아내기 어려워 한참을 고민했다. 바보다. 카미노는 벌써부터 내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고 있다. 버려야 할 것들을, 놓아야 할 것들을, 그리고 욕심부려 한 손에 움켜쥐지 않는 지혜를 지니라고. 그리고- 이 길은 누군가 말했듯 정말 처음부터 나 혼자 걷는 길이 아니다. 하긴, 살아온 날들의 한 순간도 나 혼자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감사하다. 뭐 언제나처럼 얼마나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감사하다. 기쁜 마음으로 스페인에서 만날 친구에게 전달할 물건을 챙긴다. 카미노의 천사를 이미 시작부터 많이 만나고 있으니, 언제나 내가 누군가에게 카미노의 천사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3. 친구, 이미 곁에 있는 카미노의 천사
 친구에게 전화가 왔길래, "사실 무섭다"고 징징거렸다. 친구는 말했다, "야, 니가 제일 무서워." 도움도 안되는 소리만 한다고 계속 더 신나게 칭얼거렸지만 어쩐지 힘이 난다. 그래, 솔직히 인정. 나도 세상에서 젤 무섭다. 맞아, 내가 젤 무서운데, 다덤벼라.


4. 살이 많이 빠져서 오면 참 좋겠다, 욕심도 버리고, 철은 들고, 살도 버리고................


5. 그래도 스페인 무서워.... 코쟁이 나라. 무섭다. 그래도 내 등짝에 빡! 실린 아시아의 친구들, 힘나자. 힘난다!!!

0425 _ word for today 연날리던손



"One man with ideas will be invincible"




은희경 '그것은 꿈이었을까' / 소설과 현실의 괴리 오늘 잡은 글



-저는 슬픔을 잘 견디지 못해요. 사람들은 모두 다 슬픔을 잘 참는 것 같아요. 어떻게 그처럼 슬픔에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죠? 슬퍼도 일을 하고 먹기도하고 영화도 보고, 그러다 보면 슬픔이 사라지기도 한다면서요? 담임수녀님은 기도를 하면 슬픔이 사라진다고 말하곤 했지요. 하지만 저는 잘 안 됐어요. 당신은 어떻게 해요? 당신도 슬플 때는 울겠지요?

-글쎄요. 언제 슬퍼했었는지 별로 기억이 안 나서.

-태어날 때도 울지 않았어요?

-그 역시 기억이 나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슬퍼서 울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저는 기억이 나요. 분명히 슬퍼서 울었어요. 태어나는 건 슬퍼요.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라도, 슬플 것까지야 없잖아요.

-돌봐주지 않으면 아기는 죽어요. 그게 슬프지 않단 말인가요?




중반까지 읽고, '이 대사 하나만 좋다' 고 생각하고 덮었다.
말도 안되는 지나친 우연의 남발(최근에 굉장히 이러한 우연적 만남이 나오는 이야기를 냉소적으로 읽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게 싫어지니 대부분의 소설에서 핀트가 어긋나더라. 소설과 실제가 달라지는 지점은 그건가. 결말을 예고하는 우연이 있다는 거, 그런 멋들어진 우연이 인생에 존재하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는 것.?) 과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무라카미 하루키 표절작 같았다. 더 읽으면 뭔가 나올지 모르지만, 다시 집어들게 될지는, 글쎄.

어쨌든, 최근 생각하는 소설과 현실의 결정적인 차이는 - 아마 저런 '기막힌 우연'의 부재와 더불어, '말'들 이다. 글을 쓰려고 시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작가란 참으로 꼼꼼하게 세상을 보거나, 적어도 천천히, 그리고 음미하며, 자기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명확히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아니면 그렇게밖에 안 되게 생겨 먹었거나.) 작가들이 뱉어놓은 글들을 보며,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는데- 싶어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막상 글이 써지지 않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매일 흔하게 보던 그 골목조차 상세히 묘사하려 하니 무슨 모양인지, 이 모양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어떤 색깔이었는지, 어제 나와 밥을 먹은 그 사람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그걸 표현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내놓은 글이라 그런지 - 참 이질적이다, 라고 느껴질 경우가

 등장인물 대부분의 대사들이다.

어쩜 그리 다양하고, 또 건조하고, 삶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나오는 주인공들이 '본질을 꿰뚫는 대사를 적재 적소에 이야기하는지.'


 말 못해 어버버 거리는 사람, 자기의 이야기를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해서 당황하고 주저앉는 사람은 없이 다들 어찌나 조곤조곤, 자기 이야기들을 잘 하던지.


 그 주저 없는 정확한 대사들과 자신의 내면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이야기가 흘러간다. 어쩌면 그래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 알기엔 너무 약하고, 바쁘며, 또 그래서 간결하고 정확한 말로 자신과 세계를 표현할 능력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지나가나보다.





140113 연날리던손



1. 서울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느리게, 느리게, 이렇게 평일에도 살아있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지나가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에도 살아 있구나, 이 낮 시간을, 자신의 일을 해 나가기 위해 거리를 걷는구나. 라고 (꼴랑) 직장인 삼 개월차에 들어서 생경하게 생각했다. 겁나 기억력이 안좋거나, 겁나 직장인 허세가 부리고 싶었거나 둘 중 하나 (둘 다 라고 생각) 이다. 

 생각해 보면, 학창시절에도 그랬다. 하교 이후에도 딱히 하는 취미생활이나 좋아하는 일도 없었지만, 학교에 있는게 미치게 싫었다. 가끔 아주 어렵게 온갖 연기력을 동원해 얻어낸 외출증으로 누리곤 했던 한 자락 오후의 자유. 나는 놀랬었다. 이 시간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내게 오후 세 시 이전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었으니까. 학창시절, 친구도 선생님도 공부도 무엇 하나 내 마음 끄는 것 없이 모든것에서 약간씩 떨어져 표정 없이 살던 내게 어쩌면 학교 담벼락 밖으로 보이던 오후의 생경한 따스함은 당연히 낯설 수 밖에. 학교 안에선 그렇게 차고, 더디고, 지루했던 시간에 남들은 따스한 햇살을 누리고 있었다니. 마치 배신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10대 이하의 생명들을 보면 안쓰럽고, 안타깝고, 미안하고 괜히 멋쩍다. 

 오늘, 병원에 다녀오느라 오후 출근을 하며 문득 중학교 시절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바깥 세상에 나가기 위해" 외출증을 위조해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을때의 느낌이 갑자기 살아났다. 나는, 돈을 위해서 내 순간을 팔지 않아야겠다, 무슨 일이던 평일 시간을 스스로를 위해 쓰는 직업을 가져야겠다 - 고 생각했다. 


1-1. '큰 일' 을 당해놓고도 허허허허 웃고 해맑은 나를 보고 새삼 놀랬다. 내 주변도 놀래고, 나도 놀래고. 그래도 어째.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면 웃어 넘길 밖에. 덕분에 내일 약속에 늦지 않아도 되고, 덕분에 못 쓰게 되 버렸던 주말근무 대체휴무 반차도 썼다. 허-허허. 나를 무지 귀여워해주는 간호사 언니들이랑 수다도 떨었다. 썩 나쁘지 않았는걸?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양재동으로 향해야 했다는 슬픈 전설을 빼면) 핏물을 빼고나니 잇몸도 훨 편해진 기분이다. (좀비 영화를 너무 몰입해서 봤나, 사실 약간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아담과 이브가 좋아할텐데...하며 푸핫)


2. 싫은 일들을 견뎌 내며 어떤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인지 생생하게 배우게 된다. 그리고 돈과 경력만을 쌓는 무의미한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를 발견하고, 내가 참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난 내 방식대로 정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 약속한 기간을 채우고 나면, 꼭 나를 위해, 그리고 그 후에는 쭉, 게으르고 이기적으로 살 것이다. 누구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절대 살지 않을 것이다. 재능나눔 번역, 모임, 모임, 독서, 글쓰기, 운동. 정시 출근에 포커페이스 유지에 사표 억제까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대단타, 대단해. 


3.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리 큰 욕심은 아닐 것이다. 큰 욕심이라고 누가 지껄여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내 주변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4. 예전에 내가 어떤 블로그를 보고 누군가의 연락처를 얻고 싶다고 댓글을 달았던 블로거에게 근 두 달 만에 답변이 왔다. '답변이 늦어 죄송하다' 며 도울 일이 있음 뭐든 말해달라는 따뜻한 말까지. 세상에 떠도는 호의를 '그래도' 내가 대책없이 믿고 마는 이유는, (예전에 비해 백오십배는 씨니컬해지고 사람을 믿지 않는 내게) 이런 순간에 던져지는 한 마디 들이다. 그래, 한 마디. 자유로운 영혼들이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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